[석사논문] 박권일, 「한국 능력주의의 형성과 그 비판 - 『고시계』텍스트 분석을 중심으로 - 」, 2018
- 비교문화협동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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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1-27
[국문초록]
능력주의(meritocracy)는 능력에 따른 지배(merit/cracy)를 뜻하지만, 실제로는 능력과 노력에 따른 응분(desert)의 보상체계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능력이 우월할수록 더 많은 몫을 가지고 능력이 열등할수록 더 적은 몫을 가지는 것은 당연시되곤 한다. 가령 능력이 열등한 이가 능력이 우월한 이와 같은 몫을 가진다면, 그것은 사회 전체의 생산성을 저해하는 비효율이자 부정의한 사태로 강하게 비난받는다. 그러한 능력주의는 오랫동안 한국인을 지배해온 사회적 상상이었다.
본 논문은 한국사회의 능력주의를 역사화(historicization)함으로써 믿음체계가 작동할 수 있었던 사회적 맥락을 조망하고, 동시에 그 믿음체계의 정합성을 비판함으로써 능력주의라는 당대 한국의 문제에 다층적으로 접근하려 하였다. 먼저 과거제도, 사회진화론, 입신출세주의 및 교양물신주의에 대한 고찰을 통해 능력주의라는 사회적 상상이 어떤 경로를 따라 형성되었는지를 계보학적으로 추적한다. 다음으로 『고시계』 텍스트에 나타나는 능력주의의 물화(物化) 현상을 분석함으로써 능력주의의 내면화 메커니즘을 밝혔다. 끝으로 당대 한국사회 능력주의에 대한 내재적 비판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잡지 『고시계』에 나타나고 있는 물화 현상은 오인이나 환상에 의한 ‘수동적 물화’라기보다 판단정지 또는 판단유예를 통한 ‘능동적 물화’라 할 수 있다. 고시라는 제도-담론에 참여한 주체들은 의심과 회의를 최대한 차단한 채 능력주의 실현기제로서 고시의 정당성을 승인․강화해가고 있다. 극소수 승리자에게 주어진 특권은 강한 ‘생존 편향(survivorship bias)’을 형성하여, 수험생활의 고통과 사회적 비용을 충분히 감수할만한 대가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롤즈는 자신의 정의 원칙을 통해 능력주의를 비판한다. 그는 재능과 노력에 따른 분배 신조가 도덕적으로 자의적이므로 정당화될 수 없음을 보인다. 기여에 따른 분배 신조 역시 실증적으로 확인하기 어렵기 때문에 기각된다. 롤즈는 능력주의 자체를 부정했다기보다 자신의 정의 원칙을 통해 능력주의에 대한 한계를 설정했다고 할 수 있다.
코헨은 ‘캠핑’의 사례를 통해 평등주의의 원리와 공동체의 원리가 동시에 실현되는 체제를 제안한다. 코헨은 기회의 평등으로 혹은 정의의 이름으로 금지하지 못하는 종류의 불평등을 공동체의 이름으로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캠핑장이나 재난 상황에서 인간이 발휘하는 어떤 “관대한 성향”들, 비(非)시장적 동기들을 계발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랑시에르는 공동체에 고유한 몫을 설정하는 ‘아르케 논리’-출생, 부(富), 능력에 따라 위계적으로 몫을 배분하는 불평등의 논리-가 서양 정치철학의 기원에 내재하고 있음을 보인다. 그는 평등과 해방으로 가기 위해서는 이 아르케 논리와 단절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신자유주의 이후, 상대적 약자인 사람들이 자신보다 열악한 처지의 사람들에게 “무임승차” 및 “역차별” 서사를 적용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그러한 서사를 정당화하는 기본 논리가 능력주의이다. 롤즈, 랑시에르 등이 검토한 것처럼 능력주의 관념은 잘못된 전제들에 기초하고 있으며, 민주주의와 정치 그 자체를 무력화할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오늘날 능력주의 시스템이 불평등을 점점 더 악화시키고 있음에도 능력주의가 정의라는 믿음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 능력주의의 특혜를 줄여가는 시도가 필요하다. 더 필요한 일은 능력주의가 적용되는 영역을 제한해 나가면서 평등주의가 적용되는 영역을 확대하는 것이다.
[주제어]: 능력주의, meritocracy, 고시, 고시계, 평등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