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논문] 이지희, 「고구려와 탁발선비 시조신화 비교연구」, 2012
- 비교문화협동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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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1-26
[국문초록]
고구려와 탁발선비의 시조신화는 ‘고대 동북아시아’라는 동일한 시공간을 배경으로 형성되었고, 둘 다 건국과 관련된 시조이며, 또 하백녀와 천녀라는 대비되는 신격의 모계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이러한 두 시조신화의 비교는 시조신화의 형성과 정치·사회·문화의 관련성을 파악하게 하는 한편, 고대 동북아시아 시조신화의 보편성과 특징적 양상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고구려는 부여에서 나왔다는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부여에서부터 숭배되었던 하백을 시조의 모계 혈통으로 가져와 신성성을 강화하였다. ‘하백’은 고구려의 천하관에도 부응하는 요소다. 부여를 넘어서는 것은 고구려 중심의 세계를 만드는 데 일차적인 과업이기 때문이다. 한편, 탁발선비는 이전에 명성을 떨쳤던 단석괴 선비를 극복하고 여타 선비족들을 넘어서야 선비족의 정통에 설 수 있다. 이에 단석괴 신화보다 직접적인 ‘천녀의 하강’ 요소로 천손(天孫) 혈통을 강조함으로써 신성성을 강화하였다. 그런데 탁발선비가 중원을 지배하려면 여타 선비족뿐 아니라 한족(漢族)과 상대해야 하므로 시조신화 앞에 황제(黃帝)를 종족의 기원으로 내세웠다. 고구려와 탁발선비 시조신화의 형성에는 이렇게 부여·선비족·한족 등 종족의 문제가 관계되어 있고, 고구려 천하관과 중원의 통치질서가 개입되어 있는 것이다.
고구려와 탁발선비 시조신화의 특징적 요소는 시조모로 등장하는 하백녀와 천녀이다. 이 두 시조모는 땅(강)과 하늘이라는 대비되는 신격을 가지고 있는데, 여기에는 고구려와 탁발선비의 문화적 특성이 담겨 있다. 즉, 하백녀는 하신(河神)과 농경문화의 관계, 농경과 여성의 상징적 관계가 맞물려 고구려 신화 속에서 ‘하신-여신-농경신’의 맥락을 형성하고 ‘하백녀’란 신격으로 태어난 것이다. 신화 속의 하백녀는 처음엔 하신의 딸일 뿐이지만 부여 멸망을 계기로 부여신으로 제향받고, 다시 고구려 멸망 후 신라의 성모신앙 문화의 영향으로 수렵·농경의 신모(神母)가 된다. 즉, 고구려 사회의 변동에 따라 하백녀는 몇 차례의 변화를 거쳐 통합적인 성격의 시조모가 된다. 한편, 천녀는 탁발선비의 유목문화와 깊은 관계가 있다. 유목사회의 여성은 지위와 재산, 권리와 자유 면에서 농경사회 여성보다 수준이 높았다. 이런 여성의 위상은 탁발선비의 나라에서 황후의 정치권력과 연결되었고, 아울러 탁발선비의 천(天) 신앙과 결합하면서 천녀 시조모를 생성하게 된 것이다.
신화구조 상에서 고구려 신화는 당시 천제자(天帝子)를 상징하는 보편적인 요소였던 빛과 불부이잉(不夫而孕)의 화소를 갖추고 있으면서도 모계에 신격이 부여되어 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탁발선비 신화는 천계(天系) 혈통을 모계로부터 가져오고 ‘천녀지자(天女之子)’형 시조신화의 처음이라는 점에서 특별하다. 모계의 신격화는 대개 종교적인 속성을 띠는데 이 두 신화의 하백녀와 천녀는 정치적인 속성이 강하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그러나 신화구조적인 차이로 독립신과 수행신으로 기능과 역할이 달라져 후손들의 제의를 받는 문제에서 차이가 난다. 그런데 탁발선비 신화는 동시대 천녀설화와 구조적으로 동일하고 천명을 수행하는 천녀가 등장한다는 점에서 서로 영향관계에 놓여 있다고 볼 수 있다.
고구려 주몽신화와 탁발선비 역미신화는 ‘시조의 신화화’를 통해 천의(天意)를 드러내려는 시조신화 본래의 목적을 잘 보여준다. 이와 동시에 고대 동북아시아의 정치문화, 고구려와 탁발선비 각각의 민족 문화적 특성을 가지고 있어 고대 시조신화의 성격과 특징적인 두 가지 양상을 파악하게 해주었다는 데 의의가 있다. 또한 시조모인 하백녀와 천녀가 고구려와 탁발선비 각각의 문화형태를 대변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조신화의 독자성을 드러내는 요소는 시조모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주제어]: 고구려, 탁발선비, 시조신화, 시조모, 하백녀, 천녀, 주몽신화, 역미신화